정조 무예정책 의지 담은 '호렵도 팔폭병풍' 고국품에 돌아왔다

입력 2021-02-18 11:43   수정 2021-02-18 11:44

조선 정조의 무예정책을 읽을 수 있는 '호렵도 팔폭병풍'(사진)이 미국에서 돌아와 고국의 품에 안겼다. 수묵으로 표현한 산수, 화려한 채색으로 묘사한 인물 등 지금까지 알려진 호렵도 중 예술적 완성도가 가장 높은 작품이다.



문화재청은 '호렵도 팔폭병풍'을 18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 내 궁중서화실에서 공개한다고 밝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함께 지난해 9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호렵도 팔폭병풍'을 약 11억원에 매입해 11월 국내로 들여온 작품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이 병풍은 1952년부터 1987년까지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며 이화여대 교수를 지낸 캐슬린 제이 크레인 박사가 소장했던 작품으로, 개인소장자가 크레인 박사 유족으로부터 사들여 경매에 출품했다. 이 작품이 언제 어떻게 미국으로 반출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호렵도(胡獵圖)는 '오랑캐가 사냥하는 그림'이란 뜻으로, 청나라 황제가 사냥을 즐기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이번에 공개되는 호렵도는 병풍 8폭을 하나의 화폭으로 사용해 그려졌다. 병풍 전체 크기는 가로 385.0㎝, 세로 154.7㎝이며, 그림은 한 폭이 가로 44.3㎝, 세로 96.7㎝다.
병풍 1∼2폭에는 나뭇잎이 떨어진 나무와 폭포가 쏟아지는 가을 풍경이 묘사돼 있다. 3폭에는 화려한 가마를 타고 길을 나서는 황실 여인들이 등장하고, 4폭에는 나발과 피리를 부는 이들이 그려져 있다. 5∼6폭에는 푸른 바탕에 흰 용이 새겨진 옷차림의 청 황제와 수행원, 다양한 자세의 기마 인물들이 묘사돼 있으며, 7∼8폭에는 호랑이와 사슴을 향해 활을 겨누거나 창을 휘두르는 사냥꾼들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표현돼 있다.

호렵도는 정조(1752∼1800) 때부터 제작됐다. 조선에서는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을 거치며 청에 대한 배척의식이 높았다. 하지만 정조 4년(1780년) 건륭제 칠순 잔치에 사절을 보내면서 관계가 호전됐고 청의 문물이 대거 유입되며 청의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호렵도는 이런 시대 상황에서 마상무예를 강조한 정조(1752∼1800)의 군사정책과 맞물려 제작됐다"며 "정조의 무예 정책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환수된 호렵도 병풍 8폭 하단에서는 김홍도의 낙관이 보인다. 하지만 정 교수는 "김홍도의 화풍과 산·나무의 표현이 닮았지만 옷 주름 등이 달라 김홍도의 영향을 받은 18세기 후반 도화서 화원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조선 시대 호렵도의 시작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어서 이번 환수가 뜻깊다"면서 "그동안 민화를 중심으로 한 호렵도 연구의 외연을 확장하고, 전시·교육 등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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